요즘 우리는 심심치않게 자신을 심리학적 틀로 정의하곤 합니다. ‘내향적’이라거나 ‘외향적’이라고 말이지요. 이 익숙한 단어는 현대 심리학의 거장 칼 융이 남긴 유산입니다. 하지만 융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단어들을 넘어, 더 광대하고 풍요한 곳으로의 초대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평생을 바쳐 탐구한 영역은 바로 ‘무의식’입니다. 이전까지의 무의식이 주로 ‘의식에서 받아들일 수 없어 억압한 것들이 보관된 쓰레기통’같은 공간으로 여겨졌다면, 융은 이를 개인적 무의식을 넘어 ‘집단적 무의식’의 차원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는 무의식을 인류의 종교와 문화를 형성해온 ‘창조의 샘’으로 보았습니다. 퍼내도 마르지 않는 이 샘물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융의 시선으로 본 무의식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세계만큼이나 실제적이며, 한 개인의 삶을 완성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입니다. 마치 섬을 둘러싼 거대한 바다처럼 말이지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융은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살면서 억압한 모습들, 미처 알지 못하고 간과해온 모습들, 아직 살지 못한 당신 안에 면모들이 당신의 무의식에 있습니다.”라고 말이지요. 우리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무의식과 깊은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창조의 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비로소 온전하고 원만해질 것입니다.
참고도서: 칼 구스타브 융 엮음, 이부영 외 옮김(1983). 인간과 상징. 집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