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미혼남성 A는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며 어느 정도 성취도 이루었고, 혼자 사는 삶도 이제는 익숙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안정적인 삶이었지만, 그는 “사람들과 맞추어 사는 것이 너무 피곤”하다며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피로감과 답답함이 누적된 듯 보였습니다.
그는 직장에서 반복적으로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후배, 감정적인 동료, 책임을 회피하려는 상사를 보면 “왜 저 정도 밖에 못하지?”라는 비난이 먼저 든다고 했습니다. 평생 남 탓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살아온 그였기에, 타인의 ‘불성실함’을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그는 “저도 쉬고 싶어요. 책임도 지지 않고, 실수해도 괜찮고요… 그냥 편하게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오랫동안 눌러 놓았던 마음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실은 그가 화를 냈던 대상은 자유롭게 보이는 존재, 실수하고도 가볍게 넘길 줄 아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약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어려움을 참고 버티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강한 책임감 뒤에는 약해지고 싶은 욕구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아쉬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칼 융(C.G.Jung)은 이를 그림자로 설명합니다.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을 그림자라고 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 필연적으로 그림자가 생기듯, 우리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40대에 찾아오는 짜증, 타인을 향한 이유 없는 비난은 지치고 경직되어 가는 내가 보내는 ‘구조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림자를 마주하는 것은 나쁜 부분을 고치려 하는 게 아니라, 소외되었던 나의 한 부분을 다시 안아주는 일입니다.
참고도서: 이부영 저(1999). 그림자. 분석심리학의 탐구1. 한길사